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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와 예고편/액션/SF

[명량리뷰] 명량, 과연 이순신이 중심이었을까? (스포주의. 명량 별점과 한줄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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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리뷰] 명량, 과연 이순신이 중심이었을까? (스포주의. 명량 별점과 한줄정리)

 

2014년 한국영화의 가장 큰 화두는 '명량'이다. 이미 기존의 모든 기록들을 갈아치운 명량은 마치 불가능해 보이던 명량대첩의 승리마냥, 믿기힘든 모습을 보여주면서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다. 워낙 많은 극장 속 스크린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명량이기에 이 숫자가 오버된 감도 있고, 이순신이라는 소재이기에 더욱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거나 한동안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명량.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 영화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사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이순신이나 세종대왕은 별 다른 이견이 없을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순신은 전쟁에 있어서 영웅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그런 이순신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것은 이미 그 흠모(?)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관객을 확보하고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이순신의 3대 대첩 중에 백미로 뽑힐 수 있는 명량대첩은 12척의 배로 왜적의 330척의 배와 싸워 승리를 거둔 것이니, 이거야 말로 18대 1로 싸워 이겼다는 전설보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 명량대첩을 다루었으니 관객으로서야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바로 그 전투 장면일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 못된 왜적들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 라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역사적으로 또 불가능해 보였던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페르시아 대군을 맞이하여 전투를 벌인 레오니다스 왕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비록 우회하는 길을 알려준 내통자로 인해서 스파르타 300명의 전사들이 전쟁을 벌이다가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지만, 이 전투 또한 엄청난 신화로 남겨진 전투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테르모필레 전투는 영화 300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그런데 영화 300에서는 레오니다스와 그의 부하들의 전투가 거의 무협영화 수준이었다. 거기에는 연약함이나 주저함, 갈등 고뇌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무적의 스파르타 군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페르시아 군의 모습만 남겨 있을 뿐이다.

 

 

어쩌면 명량을 이렇게 만들어도 되었을 것이다. 어짜피 명량해전에 관하여 아주 상세하게 남겨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12대 330의 전투를 영화 300처럼 그려낼 수도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게 영화를 만들면, 관객들은 지금 이순신의 그 대단한 전투를 마치 sf영화처럼 바꾸어놓을 것이냐? 라고 말하며 화낼지도 모르겠지만, 단 한척도 침몰당하지 않고 12척으로 330척과 싸워 이겼다는 것은 벌써 이미 sf만큼 기상천외한 전투사이니 그만큼 강한 이순신의 모습으로 그려내주어도 우리는 공감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렇게 이순신을 그리지 않는다. 물론 뛰어난 지략을 보이고 거기에 활솜씨를 뽐내는 이순신의 모습이 존재하지만, 고뇌하고 힘들어하는 이순신의 모습 또한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속 전투도 매번 죽을 고비를 넘기는 이순신의 모습이 존재한다. 완벽하게 k.o로 적을 쓰러뜨리는 이순신이라기보다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적에게 펀치를 날리고, 또 넘여져도 다시 일어나서 적에게 펀치를 날리는 그런 끈질긴 사나이의 모습처럼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이순신이 평범한 사람인 나에게는 더욱 더 큰 감동을 준다. 어떠한 역경도 그를 결코 넘어뜨리지 못하게 만드니까...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슈퍼 히어로보다 더 슈퍼 히어로 같은 그런 이순신.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그 이순신이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가슴이 아프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러한 생각에 영화는 묘하게 또 다른 신의 한를 내놓는다.

 

그것은 바로 백성이었다. 영화 '명량'속 백성들의 존재는 그저 이순신이 구해주어야만 하는 연약하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슈퍼히어로들의 백화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어벤져스 또한 "시민들은 슈퍼 영웅들에게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로 나온다. 아니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러하다. 주인공을 빛내기 위해 시민들은 그저 연약하고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명량에서 나오는 백성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수 중에 하나'인 이순신에게 도움만 받는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 속 그들은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에서 힘겹게 노를 젓고, 전투에 참여하기도 한다. 온 몸이 깨지고 터지면서도 승리를 위해 밑바닥에서 고생을 한다. 이뿐인가? 조류에 빨려 들어가는 이순신의 배를 구하는데 백성들의 활약이 존재했으며, 영화 속 가장 큰 위험이라고 할 수 있는 일종 '폭탄배'로부터 이순신을 구하는데 있어서도, 백성들의 역할은 지대했다.

 

 

이러한 백성들의 활약(?)이 드러나는 명량해전이 왜선들의 후퇴로 마무리 되고 나서, 영화는 기억할만한 2가지 장면을 보여준다. 하나는 백성들이 배 밑바닥에서 승리의 휴식을 취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 것을 우리 후손들이 알까?" 라고 말하는 장면과 극 중 정씨 여인으로 나오는 이정현이 죽은 남편의 호패를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장면이다.

 

이러한 장면들을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명량해전이라는 기적과 같은 승리의 뒤에는 이순신과 같은 불세출의 영웅만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직접 피를 흘린 민초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닐까? 그렇기에 영화 속 이순신은 자신의 아들에게 '천행은 갑자기 생겨난 소용돌이가 아니라 백성'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명량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면, 겉으로는 이순신이 보이지만, 속에는 민초들의 희생이 보이는 영화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민초들이야 말로 나라의 근간을 이룬다는 것을 영화는 다시금 영웅의 시선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러한 영화의 귀중한 메시지는 그 당시 조선의 관료들만 들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관료들에게 제시된다. "당신네들에게 이순신 같은 위대한 존재는 기대하지 않는다. 허나 제발 백성이 이 나라의 근간이라는 것만은 깨달아 달라"라고 말이다.

 

 

별점: ★★★★

한줄정리: 이순신보러 갔다가 백성을 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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