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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매고 세계로../짧은여행기

하루에 40km를 걷는 소년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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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함에 있어서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보다 걸을 때 더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걷는 것은 단순히 이동행위로서만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또한 내가 만나는 그 여행지의 하나하나를 나의 온 몸으로 느끼게 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먼 거리가 아닌 이상은 여행지에서 두 발로 걸어다니는 편입니다. 물론 짧은 거리에 드는 교통비를 내기 싫은 마음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걸어다니면서 참 멋있는 장면들을 많이 보곤 했습니다. 눈 앞에 광대하게 펼쳐진 벨리를 보며 조물주의 손길에 감탄하기도 하고,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향해서 걸어가면서 물이라는 것의 영향력을 몸소 체험해보기도 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는 그 로마의 길들을 걸어보면서 단순히 도로가 도로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여행거리가 되는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알프스의 눈들에 발을 푹푹 빠뜨리면서 그 설경 앞에서 차가운 숨을 내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걷기 여행은 하루에 40km를 걷는 소년을 만났던 여행이었습니다. 그 소년을 만난 곳은 바로 터키의 산르우르파 라는 장소였습니다.



이른 아침, '하란'이라는 장소를 가보기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의 조식을 먹습니다. 그래도 터키에서 이 정도의 아침 식사면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객 입장에서는 좋은 호텔에서 식사한 편에 속합니다. 적어도 싱싱한 야채와 삶은 계란을 제 마음대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속을 든든하게 채운 뒤에 바쁘게 발 걸음을 옮깁니다.




산르우르파에서 하란까지의 거리는 터키 전체 지도에서도 떨어져서 표시되어 있으니[참고로 터키는 우리나라보다 7배 크다고 합니다.] 무시못할 거리일 것입니다. 이 정도 거리는 전체적인 일정에도 문제가 생기기에 버스를 잡아 탔습니다. 사람들에게 '나 하란에 가보고 싶어요'라고 말을 합니다. 친절한 사람들이 이 버스를 타고 가라고 말을 해줍니다.







버스 안에서 보이는 풍경속에는 우리가 가보고 싶은 '하란'의 그림도 있습니다. 수천년간 저 형태의 전통가옥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있는 곳, '하란' 그들의 전통 가옥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고, 그 땅 너머의 시리아를 바라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지의 어느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정말 가슴 설레이는 그런 일인 것 같습니다.




마주 지나가는 마차가 보이는군요. 산르우르파는 터키를 반으로 잘라놓았을 때 동부지역에 속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관광객들을 찾아볼 수 없고, 사람들도 도시의 세련됨 보다는 일종의 시골의 정겨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하란'은 어떠한 곳일까? 기대하며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의 차장이 내리라고 말을 합니다. "???", "여기가 하란인가요?"(실제로는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하란??) 맞다고 어서 내리라고 재촉하는 차장 때문에 어리버리하게 버스 문에서 내립니다. 아무리 봐도 전통가옥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현지 상황을 모르는 여행객으로서 순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이곳 산르우르파 사람들은 터키어보다는 아랍어가 더 잘 먹히는 장소입니다. 그러하기에 짧은 기간에 급조하여 배운 터키어로 길을 묻기는 그리 힘들어 보이더군요. 결국 급조하여 배웠던 아랍어로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봅니다. 하란이 어디인가? 하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언어 때문이지... 의사 소통은 쉽지 않더군요. 결국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 사람들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조금 걷다보면 '하란'이 나오겠지 하는 마음에 걸어가봅니다. 버스의 차장이 하란이 맞다고 했으니 이제 조금만 걸으면 되겠지...

이때 말을 거는 한 소년을 만나게 됩니다. 그 소년도 같이 버스에서 내렸던이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흐메트'... 이슬람교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마흐메트'='무함마드'가 같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이슬람교의 창시자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사실 위 사진은 나중에 찍은 것입니다. 처음부터 카메라를 들이댈 수는 없지요.] 그가 말합니다. 하란을 가냐고... 자신도 하란을 간다고~

하지만 이 소년과의 대화는 정말로 힘이 들더군요. 영어를 전혀 모르는 아이었고, 터키어도 거의 못하는 그런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거리가 얼마냐? 얼마나 걸리냐? 등을 물어보지만 쉽지 않은 대화 속에서, 결국 알아낸 것은 이 아이도 하란을 가고 걸어서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에 같이 동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여행이라는 것, 그리고 특히 도보 여행이라는 것은 이러한 의외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외성은 재미가 됩니다. 생판 몰랐던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같이 동행하게 되면서 더 친해지게 되고, 여러가지 독특한 것들을 겪게 되니까요.


걸으면서 먹는 오렌지의 맛을 아시나요? 오렌지는 자리에 앉아서 먹는 것보다 걸어다니면서 먹는 것이 더 맛있답니다. 새로운 동행자도 생겼겠다. 기분 좋게 걸어가기 위해서 보이는 가게에서 '오렌지' 몇 개를 삽니다. 햇살도 적당하고 걷기에 딱 좋은 그런 날씨더군요.

길 옆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양떼들도 보입니다. 마치 우리 시골의 풍경으로 바꾸면 소나 염소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 10분쯤 걸었을까요? 저 멀리 보이는 산이 보입니다.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왠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이상하게 저 멀리 보이는 산이 보이면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궁금증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고 있으면, 정말 내 자신이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동 수단의 발달로 짧은 시간안에 지구를 한 바퀴 돌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하루를 꼬박걸려도 얼마 이동하지 못하는 걸음이 오히려 저를 마치 판타지 세계속으로 이끄는 것만 같습니다. 어짜피 한 바퀴 돌아봐야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올텐데... 왠지 나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거지요.


이런 감상 속에서 20분...30분...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것인가? 소년에게 물어봅니다. 하란은 아직도 먼 것이야? 하지만 역시 의사소통의 문제는 바벨의 혼란 이후 계속 되어오나 봅니다. 도통 알아듣지 못하는 그 상황속에서 또 다시 미소만 서로 날린채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걸어가야 하는 거야?'

이러한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눈 앞에 펼쳐지는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실로 제 자신을 놀라게 할만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표지판이었습니다.

하란... 38km....

이... 이런......................................



그 순간 그동안 마흐메트와 대화 중에서 이해가 안 갔던 것들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분명 명확하게는 아니었지만 5시간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했는데... 그럴리는 없다고 스쳐지나갔던 그런 말들이 머리속에서 무섭게 꿰맞춰지기 시작하는 것은 정말 '식스센스'를 능가하는 반전이었습니다.

정리해서 말해드립니다. 마흐메트 이 소년은 마치 그 옛날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께서 산 넘고 물 건너 학교를 가고 읍내를 나가는 그런 식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란 그곳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시시시시시시시시골이었던 것입니다. 알고보니 마흐메트는 학교를 산르우르파로 다니는데 (하란이라는 곳에 학교가 없어서) 매일 그곳을 걸어서 다니던지, 아니면 히치 하이킹을 하면서 다녔던 것입니다. [자녀들 학교 멀다고 징징대면 이 포스팅 좀 보여주십시요. 얘는 맨날 이러고 다닙니다.]물론 돌무쉬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돌무쉬는 이용하지 않는 그런 소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마흐메트가 저를 만난 날 산르우르파에 갔던 이유는 옷 사러 나왔던 것입니다. 아마도... 하란에는 옷 가게가 없었나 봅니다. 너는 어떻게 옷 살라고 그 먼 거리를 왔다갔다 하니 ㅠㅠ

순간 머리를 띵하게 얻어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제길... 어떻하냐? 돌아갈 수도 없고 더 갈 수도 없고... 분명 가까운 곳이라 생각하고 걸었건만, 이 소년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제서야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향해서 '히치 하이킹'을 시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마음씨 좋은 한 아저씨에 의해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줄이게 됩니다.


아저씨가 내려준 길 반대편에는 한창 일을 하고 있는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자 너무도 반가워하며 물을 한 대접씩 대접해 주더군요.

이런 그들의 정을 맛 보게 되는 것도 어쩌면 길 위의 여행자만이 가지게 되는 특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이 귀한 곳에서 물을 한 대접 받을 수 있다는 것... 물갈이의 걱정도 잠시 내려놓은 채 시원한 생수로 지친 몸에 원기를 불어 넣어 봅니다. 고마워요~ 슈크란!! 데쉐키르 에데림!!





한 20여 km 남았을까요? 지나가는 돌무쉬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궁한 마음이 통한 것일까요? 저 멀리서 하란을 향해 달려가는 돌무쉬를 잡게 됩니다. "이 소년아! 진작 말해줬으면 이걸 타고 편하게 갔을 거 아냐!" 하긴 말해줬어도 제가 못 알아 들었겠지요.

돌무쉬를 타고 가자는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 마흐메트... 형이 차비를 대신 내주겠다는 말에 어떻게 귀신 같이 알아듣고 표정이 밝아집니다.













그렇게 돌무쉬로도 달린지 30분 정도... 마침내 하란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그곳은 정말 시골이었습니다. 그저 목적지도 없이 마흐메트가 걷는대로 따라 걸어 들어갑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아는 것은 하나도 없고 이 친구가 아는 것뿐이니 말입니다.

"마흐메트~! 너희 집은 어디야?" 라고 물어는 봅니다만... 어렵게 알아낸 것은 그의 집은 이곳에서도 더 떨어져 있다는 것... 하지만 이곳까지 고생하면서 온 것에 대한 미안함일까요? 그는 자신의 집으로 가지 않고 하란을 구경할 수 있도록 같이 있어주더군요.










정말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유적지 같은 곳에서 이곳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더군요. 참고로 이 마을 사람들 전체가 다 관광업을 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아에 이 마을 자체가 관광지이니까요. [하란에 대한 더 자세한 포스팅은 다음에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란의 이것저것을 둘러보고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시간... 함께 동행해준 마흐메트에게 같이 식사를 하자고 말을 합니다. 물론 밥을 사준다는 말과 귀신 같이 알아듣는 귀가 함께 한 작품입니다.














고된 육체는 먹는 음식을 더욱 맛있게 만들어주는 조미료가 되는 것 같습니다. 터키의 케밥이 이처럼 맛있게 느껴지기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때가 여러번 있기는 했지만 말이지요. 그렇게 같이 즐거운 식사를 하면서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정겨운 정을 나눌 수 있었던 만찬이었습니다.


여행이라는 것은 이렇게 의외성이 존재하는 것만 같습니다. 마흐메트라는 소년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으며, 그가 정말 옛날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의 어린시절과 비슷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직접 함께 동참하며 알게 될 줄도 몰랐으며, 대한민국도 아닌 터키의 저 시골에서 마음씨 따뜻한 할아버지들의 물 대접과 이름 모를 아저씨의 히치 하이킹, 찬란한 햇살, 그리고 하란이라는 동네의 여러 풍경들을 담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몸은 고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여러가지 의외성이 생겨났기에 더 흥미진진했던 것이기도 하구요. 그런 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걷는 여행에서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행이라는 것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한 듯 그 자체로 발견되는 것이 많다는 것은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두 발로 땅의 느낌을 받으며 너무 빨리 지나가지 않아 내 온 몸으로 느끼게 되는 그런 "걷는 여행"은 단순히 이동 수단으로서의 선택이 아닌 훌륭한 여행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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